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설리번 5형제 (문단 편집) == 유사 사례 == 또 다른 같은 군함에 배치된 형제로 [[코네티컷]] 뉴 헤이븐 출신의 로저스 3형제 외 최소 30형제가 있다.[* 로저스 3형제는 [[뉴올리언스급 중순양함]] USS 뉴올리언스에 승선 해있다가, 과달카날 해전이후 벌어졌던 [[타사파롱가 해전]]에서 형제 3명 모두 전사했다.] 당연히 형제를 다 합쳐 30명이라는 게 아니라 형제들이 자원입대해서 같은 함정에 배치된 게 30형제나 된다는 뜻이다. 이들 역시 설리번 형제의 몰살 이후 전부 근무지가 다르게 변경됐다. 다만 근무지가 다르게 배치되었음에도 형제들이 줄초상 나는 일이 생기기도 했는데 1944년 [[미합중국 육군]](4명, 이 중 [[육군 항공대|항공대]] 2명) 및 [[미합중국 해병대|해병대]](1명)에 입대한 [[https://en.wikipedia.org/wiki/Borgstrom_brothers|보그스트롬 5형제]][* 본래는 7형제였으나 장남은 전쟁 전 사망했고, 막내아들은 징집연령에 미달된 상태여서 참전하지 않았다가 형들이 연달아 죽은 후에는 군 면제가 되었다.] 가운데 4명이 1944년 6월~8월 동안, 즉 단 두 달 만에 모두 줄초상이 났고(!) 결국 가족들이 마을 주민들과 주 의회의 도움으로 마지막 남은 아들의 군복무 중단을 청원한 일이 있기도 했다. 다행히도 이 청원은 받아들여져 마지막 남은 아들은 미국으로 돌아왔다.[* 이 인물이 그 유명한 '''[[라이언 일병 구하기]]'''의 실제 모델 중 하나다.] 이후 형제 혹은 자매들이 군복무를 하다 한 명만 남고 나머지가 모두 죽으면 나머지 한 명은 반드시 귀국 및 전역시키도록 하는 유일한 생존자 정책(Sole Survivor Policy)[* 정식 명칭 국방부 지침 1315.15 "생존한 자손에 대한 전역 정책" (DOD Instruction 1315.15 "Separation Policies for Survivorship")]이 1948년에 도입되었다. 일반적으로 알려진 명칭과 조금 다르게 복무중인 형제 자매 중 하나 이상이 전사할 경우 둘 이상의 형제가 생존하더라도, 혹은 아버지나 어머니가 군 복무중 전사했을 경우 전역을 신청할 수 있다. 또한 해당 정책은 강제가 아니고, 형제 자매의 전사를 통보받은 나머지 형제 자매, 혹은 아버지나 어머니가 전사한 자손이 원하면 전역을 신청하지 않고 해당 부대에서 계속 근무하거나, 아니면 현역 복무를 하되 안전한 본토에서 복무를 마칠 수 있도록 전속하는 수준에서 끝낼 수도 있다. 이와 비슷한 사례이자 아예 한 고장이 절단나는 경우가 있다. 영국의 경우 1차 대전 당시 육군에선 'Pals(팔스, 지역연대)'라고 해서 한 부대에 같은 지역/구역의 사람들을 몰아서 배치하는 방식을 사용했는데, 이는 과거 영국 육군이 지역 영주들이 자기 영지에서 직접 징병 혹은 모병해 연대를 꾸리고, 국왕이 소집령을 내릴 때마다 이들을 끌고 참전했던 전통의 영향, 서로들 잘 아는 사이니까 전투력을 늘리는 데 도움이 될 거라는 판단, 징병 행정의 편의성 확보 차원 등에서 했던 것이다. 그러나 사람이 개미 목숨마냥 죽어나갔던 1차 대전의 [[솜 전투]]에서 한 지역의 젊은 남자들이 한꺼번에 몰살당하는 사태가 빈번해져서 마을이 사단나는 일이 빈번히 벌어진 것이다. 이런 '팔스'에 소속되어 참전한 어떤 젊은이는 전쟁이 끝나고 동네에 돌아와 보니 자기 또래의 남자가 모두 죽어 자신만 남는 암울한 상황을 겪기도 했다. 몇 년간 죽도록 싸워서 겨우 살아남아서 고향에 돌아갔더니, 어린 시절부터 알던 수백 명이나 되던 동네 친구들, 형, 동생, 심한 경우 삼촌, 아저씨들까지 전부 죽거나 상이군인이 되어 멀쩡한 사람은 많지 않은 상황이었으며, 반겨주는 건 가족뿐이고 주변사람들은 자식이나 형제, 남편 잃은 분노에 생존자들을 '겁쟁이라서 살아남았다'고 매도했다. 이들의 더 심한 비극은 지인들이 수백 명 단위로 계속 죽어나가는 걸 바로 옆에서 계속 지켜봤다는 것이다. 워낙에 많이 죽어서 오히려 멀쩡히 살아 견뎌낸 사람이 비정상인 지경이었다. 이외에도 영연방인 캐나다군 소속의 뉴펀들랜드 연대는 공격개시 20분 만에 총원 780명 중 712명의 사상자를 내기도 했다. 비단 영국뿐만이 아니라 이러한 편성은 독일 육군과 유럽의 군제를 그대로 베낀 일본 육군도 이랬으며, 그 결과는 비슷했다. 이렇게 생존자를 동향 유가족들이 비난하는 분위기는 제2차 세계대전 때에 되어서야 없어졌는데, 1차대전 때 생존했던 사람들이 유가족 및 참전용사의 부모나 삼촌 등이 된 경우가 많아 그들을 충분히 이해할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영국 본토 항공전]]으로 후방에 있던 여성들도 전쟁의 참화를 겪자 진짜 전쟁에서 살아돌아온 남자들을 비난하지 않게 되었기 때문이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